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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 (전북여행/군산여행)

자유로자유로 2013. 7. 1. 05:54

 

 

Hi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 5. 1 강제로 개항된 항구가 군산입니다.

 

곡창지역인 호남 충청지역의 농토를 빼앗아 가난한 일본 농민들을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하고, 쌀과 다른 농산물 등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인구 500여명의 조그만 어촌마을을 개발한 도시가 군산입니다.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만주 등으로 떠나 유랑농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농토를 빼앗기고 소작인으로 전락한 농민들의

 소작쟁의가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 전북지역입니다.

 

그런 소작인들을 보고 그 당시의 일본인, 친일파들. 친일언론에 세뇌된 조선사람들은

<저 놈들은 항상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놈들이야~>하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반민주적인 행위에 저항 하는 사람, 근로자들에겐 허리띠를 졸라매게하고

조세피난처에 엄청난 돈을 빼돌린 경영진들에게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친일파 후손들, 독재세력에 추종하는 자들, 찌라시 언론에 세뇌된 사람들이

<저 놈들은 항상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놈들이야~>하듯이~~

 

1908년  전주 -군산간 포장도로가 전국 최초로 만들어지고

익산-김제-정읍간 철도보다 익산-군산간 철도가 먼저 만들어지면서

군산은 호남 최대의 상업도시로 성장했었죠.

지금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군산~!

 

 

손가락 안의 숫자 클릭은 포스팅의 원천입니다.

 

 

오키

 

 

 

 

110년여 전에 건설된 바둑판 같은 도로.

신작로(新作路)란 말이 생긴 것도 이 때입니다.

 

일제강점기의 건물과 거리가 잘 보존된 군산.

다른 말로 말하면 거의 발전이 되지 않은 도시입니다.

왜 발전이 되지 않았을까요?  알랑가 몰라~~~??

다음에는 군산에서 숙박하면서 저 역사의 거리를 탐방해볼려구요.

 

 

 

                                                   

한말 일제 때 군산 인구와 호수
년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 전체
호수 인구 호수 인구 호수 인구 호수 인구
1899 150 511 20 77     170 588
1900 253 780 131 422 8 24 392 1,226
1901 320 921 171 472 19 56 562 1.449
1910 825 2,835 569 2,050 40 96 1,443 4,981
1913 1,278 5,197 1,242 4,765 26 82 2,546 10,044
1919 1,742 6,581 1,665 6,809 57 214 3,464 13,064

<자료출처: 군산시청>

 

 

이미 1876년 강화조약 前後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99년 개항당시 인구 588명에서

1910년 경술국치에는 4,981명으로 8배 이상 증가하고

1919년(3.1운동)에는13,064명으로 22배 이상 증가했군요.

일본인이 조선사람보다 더 많이 살았습니다.

 

 

슈퍼맨

 

 

 

 

 

 

 

중앙부처의 도움을 받아 <군산 근대역사경관사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오늘 갈 곳은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東國寺)입니다.

 

 

오홋!~ 동국사 가는 길이

<2012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군요.

오키

 

 

 

 

 

 

 

 

마치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느낌입니다.

오른 쪽 아래의 일본식 가옥은 수선유지가 시급합니다.

 

 

 

 

 

 

실제 여인숙이었는데

지금은 뜻있는 작가들이 각종 전시회 등을

하는 <군산 창작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답니다.

 

 

 

 

 

조계종에는 25개 교구가 있습니다.

그 중에 교구본사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고 말사를 거느리고 있죠.

이 동국사는 24교구 본사인 고창 선운사의 45개 말사 중 하나입니다.

커피한잔

 

 

 

동국사는 1909년 일본 조동종(스님의 결혼이 허용하는 종파의 이름)의 우찌다스님이

일조통에 <금강선사>라는 포교소을 만들었다가 1913년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대웅전과 요사채를

지었고, 해방 후 정부에 이관되었다가 1955년 불교전북교당에서 인수, 전북종무원장이던

김남곡스님이 <동국사>로 개명, 1970년 선운사에 증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 제 64호>임.

 

 

 

 

 

 

 

 

 

정면 5칸, 측면 5칸, 단층팔작지붕 형태의 대웅전

에도시대 건축물 양식입니다.

 

 

 

 

 

 

 

 

 

아내가 있던 조동종스님을 위해 지어진 요사채,

복도로 법당과 요사채가 연결됩니다.

 

 

 

 

 

 

이중처마입니다.

 

 

 

 

 

군산시 신경애 문화관광해설사님이 확실하게 설명해주시네요.

 

 

 

 

 

 

 

1913년 절을 지을 때 심었다던 나무인데

 이름의 생각나지 않네요..죄송

 

 

 

 

 

1992년 일본조동종에서 이 절을 방문하고자 요청이 왔는데

 당시 주지스님의 요구로 <참회와 사죄의 글>을 써서

이렇게 세운 뒤로 방문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1919년 일본 경도에서 주조된 <동종>과

사방으로 <32관세음석불상>과 <12지수본존석불상>이 있는 범종각

 

 

 

 

 

법당과 요사채는 이런 복도로 연결.

동국사의 모든 목재는 일본산<쓰기목>입니다.

종무소도 요사채 건물안에 있군요.

 

 

 

 

 

일제강점기 때 스님이 입었던 옷입니다.

 

 

 

 

 

 

 

보물 제 1718호인 <소조석가여래삼존상> 효종1년 (1650)에 조성.

금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좌우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정말 일본에 관광온 듯 합니다.ㅎ

 

 

 

 

 

 

군산을 배경으로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농민이 어떻게 몰락했으며

도시화 과정에서 한 고장의 삶의 풍속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린

<탁류의 채만식>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던 <만인보의 고은>시인님이

이 고장 출신입니다. 고은 스님이 이 곳 동국사에서 1951년 출가한 적이 있습니다.

 

 

 

 

 

 

 

 

 

근현대사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군산~!

대웅전앞의 석불은 이 도시의 아픔을 다 보듬고 있으리라...

자유로가 강추합니다. 꼭 가보세요...

일본인 부자가 살았던 그 시절의 일본가옥으로 계속 GO GO~~

 

 

쌩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네티즌은 댓글을 남긴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