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역사는 인도차이나 반도 나라 중에서도 가장 기구합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슬픈 역사..
오랜 식민지, 수 많은 외세의 침략,
열강이 그어놓은 17도선과 남과 북의 민족상쟁의 비극..
그래도 지금은 통일되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어도
꿈과 희망이 있는 국가다.. 그러나 권력이 강화되면
부정부패도 만연해지는 법..
남부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의 통일궁을 가봅니다.
현대사 최악의 비극인 베트남전쟁의 종결지.
프랑스가 인도차니아 식민지들을 지배하기 위해 지은 건물.
프랑스 총독의 영사관이었다가 1954년 제네바협정으로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과북으로 분할된 뒤, 남부베트남(월남)의 초대 대통령
응오 딘 디엠(Ngo Dinh Diem)의 관저였습니다. 독립궁으로 불리었죠.
1975. 4. 30 월남이 패망할 때 까지 대통령관저였습니다.
통일된 후 통일궁으로 이름바뀌고 지금은 역사적인 기념관이 되었답니다.
지금은 정문 앞을 시민들이 너무도 자유스럽게 다녀요
베트남 여행을 다니면서 개인의 활동이 너무 자유스러워서
당황한 적도 있었습니다.
대통령궁이었다가 지금은 통일궁(통일회관)으로 이름 붙이고
관광명소로 바뀌었죠. 입장료 3만동(약 1,800원)
1962년 월남 공군이 대통령을 살해할 목적으로 폭탄을 2발 투하한 후
4년에 걸쳐 재건축되면서 폭탄에 견딜 수 있는 지하벙커가 새로 만들어졌죠.
간단한 베트남 역사를 설명하는 가이드.
1963년 쿠데타로 즈엉 반 민(Duong Van Minh)이 대통령이 되었다가 그 무능함으로
다시 응웬 카인(Nguyen Khanh)에게 밀려나고 1963~65년까지 엎치락 뒤치락 대통령이
바뀌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그 혼란을 틈타 응웬 반 티우(Nguyen Van Thieu)가 쿠데타를
일으켜 1967년에 대통령이 되고 부정선거로 1971년 재선되었답니다.
1975년 북베트남의 대대적 공격으로 사이공 함락직전 금괴와 스위스비밀은행에
예치된 거액의 비밀예금을 갖고 대만 런던을 거쳐 보스톤으로 도망갔다네요.
티우대통령: 우리 어렸을 적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에 파병하고
티우 대통령과 돈독한 동맹을 자랑하던 신문기사들이 눈에 선합니다.
이 사람은 원래 민족공산주의 시초인 베트남독립연맹에서 프랑스에 저항하다가
전향해서 군사령관이 되고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대통령 시절 독재와 부정부패가 만연했죠. 멸망의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2001 .9. 30 망명지 미국에서 78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여기서 뭔가가 생각나지 않으시나요?ㅎㅎ
평생을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살다간 호치민(胡志明,1890.5.19~1969.9.2)
베트남 국민들에게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
우리의 김구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이공이 함락되고 월남이 패망한 날이 1975. 4. 30일 입니다.
1975. 4. 8 월남공군이 폭격기를 몰고 민심이 이반된 티우정권을 향해
폭탄을 대통령궁에 던지고 월북한 일 있습니다.
그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티우대통령은 1975. 4. 21 패색이 짙자 스스로 사임하고 외국으로 도망갔습니다.
1975. 4. 30일 대통령궁의 정문인 이 곳을 탱크가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옥상에 해방기를 게양했죠.
소련제 T-54 탱크
1975. 4. 30일 상오 11시 30분 북베트남군 제 843호 탱크가 선두로
사이공 대통령궁 철문을 박차고 진입했습니다.
옥상에 해방기를 단 지휘관이 탱크의 지휘관인 29세의 부이 꿩 쩐(Bui Quang Than) 중위였습니다. 영웅되었죠..ㅎ
나중에 탱크부대 대령까지 진급했다가 지금은 시골에서 새우농장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제 T-59탱크
깃발을 게양하기 위해 비무장으로 깃발만 든 채 뛰어가던 부이 꿩 쩐 중위를
두번쨰로 진입한 제 390 탱크 지휘관 부당토안(Vu Dang Toan)중위가 자동소총을 들고
뒤쫒아 가서 역시 영웅이 되었답니다.
1975. 4. 21 티우대통령이 사임하고 찐 반 흐엉(Tran Van Huang)이 대통령이 되어서
북베트남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하자
1975. 4. 26 즈엉 반 민(Duong Van Minh)이 다시 대통령 자리을 이어받고
1975. 4. 30 더 이상의 베트남 국민들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항복한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아래 3장의 사진은 자료사진임

북부 베트남군이 대통령궁에 무장진입하자
쯔엉 반 민 대통령과 각료들이 아무런 저항없이...
가운데 안경쓴 이가 쯔엉 반 민 대통령 180cm의 거한이었습니다.

대통령궁을 경비하던 군인과 경호원들을 제압한 북부베트남군.

각료 대기실의 장관들도 ... 항복하고...
참 아이러니 합니다.
다시 통일궁을 관람합니다.
2층의 티우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는 전쟁상황실이 있습니다.
3층에 있는 대통령 서재
각료 회의실
화려한 접견실이 여러 곳 있더군요.
정치를 잘하고 나라를 잘 이끌어야지.
접견실만 화려하면 뭣할까요?
베트남의 왕조의 마지막공주? 아니면 퍼스트레이디?
다음에 꼭 확인하겠습니다.
조그만 극장도 있군요.
대통령과 그 가족들을 위한...
각료들과 쑈도 즐기고...
2층 뒷 편에 대통령이 생활하던 안채입니다.
코끼리 발을 박제로..
아빠, 엄마, 아기 코끼리겠죠?
정원도 만들어져 있어요.
대통령과 가족들의 침실
식당
오락실이라네요..
마작도 있고..
4층 연회장에서 정문쪽을 바라봅니다.
부패한 대통령이 각료들과 연회를 즐기던 곳 이라네요.
영화배우 가수들 불러다가 연회를 즐기곤 했다고합니다.
3층에 대통령 헬기장을 만들어놓고..
저런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갔다네요...
빨간 표시는 앞서 설명한 비행기의 폭탄이 떨어진 지점이라고 합니다.
지하 벙커로 내려가봅니다.
가이드가 북위 17도선을 가르킵니다.
제가 다녀온 훼, 호이안, 다낭이 가깝습니다.
그 당시의 병력현황
따이한(파월국군) 50,355명 보이시나요?
지하벙커의 대통령실과 침실.
전쟁에서 통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그 당시의 최신식 통신장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통일궁의 뒷 모습입니다.
저 젊은 베트남 청년들이 그 전쟁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까요?
20세기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인 베트남 전쟁의 종결의 상징 통일궁.
같은 동족끼리 비극적인전쟁.. 우리의 아픔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벳남은 통일되었고 우린 아직도 분단의 아픔이 계속되고
민족 간의 갈등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면 종북분자로 몰아가는 이 냉정한 현실...
누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참 답답합니다. 통일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않는 자는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추천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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