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18세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천주교 신앙.
이 신앙을 지키려던 사람들은 정의의 원천인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요?
忠, 孝, 義를 존중하던 우리 문화와 결합되어 순교가 이루어졌고
신앙이 토착화 되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알게된 <독립군의민단>을 소개합니다.
저자 이영호는 카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수원교구 중국 성소후원회와 중국선교위원으로 활동 중.
조광교수는 고려대 명에교수로 한국사학자입니다.
천주교회사연구에 독보적인 분입니다.
서울대학교 , 카톨릭대학, 동성중고등학교가 가까이 있는 혜화동로터리.
1960.4.19 '피의 화요일'에 서울대생들이 이곳에서 시위를 시작했죠..
몽양 여운형선생이 피살되었기도 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그래서 동성고 담벼락에 이런 기념물이 서있어요.
바로 그 옆에 동성중.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카톨릭학교입니다. 장면총리가 교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죠.
일요일이면 필리핀 마켓이 형성되는 곳입니다.
동성중,고등학교 정문.
염수정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축하프랭카드가 걸려있군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과 겸직으로
1 代 프랑스인 바르텔르미 브뤼기에르 주교(1831.9.9~1835.10.20 재임)부터
염수정대주교까지 14대 째입니다.
前에는 프랑스인 교구장들이었고 한국인은 노기남 대주교(1942.11.10~1967.3.23 재임),
윤공희대주교, 김수환추기경, 정진석추기경에 이어 다섯번 째입니다.
동성고등학교 담벼락에 이런 일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2차대전 말기인 1943년~45년 일제가 4300명의 학생들을
<학도특별지원병>이란 허울로 강제 입대시켜 각 전선에 보낼 때
입대전 합숙훈련장으로 사용된 장소가 바로 동성고등학교입니다.
바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노기남대주교가 서울교구장이던 시절입니다.
그 치욕의 과거사를 되풀이 되서는 않되겠다는 준엄한 경고의 상징으로
이 일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일념비를 소개합니다.
동성고등하교 100주년 기념관에 특이한 행사가 열리네요.
지나가다 우연하게 들려봤어요.
뭘까? 하고
자유로의 호기심은 아직도 소년입니다.ㅎㅎ
평생 처음 들어본 <독립군 의민단> 희생자 추모미사 및 출판기념회군요.
독립군 의민단??
들어보셨나요?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정말 선량하게 생기신 어르신들이
의민단을 위한 추모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 사회의 비주류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바로 독립운동 비스므리한 분들은 비주류로 살고
친일, 독재세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은 주류로 산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책을 보니까 독립군의민단은 조선의 변방 간도에 살던 순박하고 신실한
천주교신자들이 <독립군 의민단>을 조직해서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하고
독립전쟁을 치루었군요. 그러나 천주교 지휘부는 식민지배에 대한 굴종으로
어느 정도 거짓된 종교자유를 얻고 <정교분리>라는 말로 굴종을 호도했습니다.
바로 <독립군 의민단>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고...
저자 이영호는 <독립군 의민단>을
천주교 교회사에 정식으로 편입되기 바라고 이 책을 썼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 지도부의 <정교분리>는 식민지배의 반대에만 적용되었고
식민지배의 찬성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
바로 그 허구성이 오늘날까지 역사를 굴절시키고 있습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좋은 공부 하였습니다..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는
가끔 생각해보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추천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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